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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의 장애인 거주시설 서림케어드림에서 탈시설 한 1급 중증장애인 이형기씨
 충남 서산의 장애인 거주시설 서림케어드림에서 탈시설 한 1급 중증장애인 이형기씨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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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어린 시절은 집에서 생활하고 청년 시절부터는 복지원이란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면서 나만의 공간 또는 나만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항상 꾸고 있었다. 그 꿈을 실천에 옮길 기회가 생겨 행복하고 이 기회가 생기기까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신 기관과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막상 울타리 밖으로 나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반 설렘 반이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사회에 나가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에서도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 가져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충남 서산의 장애인 거주시설인 서림케어드림에 거주하는 1급 중증장애인 이형기(61)씨가 불편한 손으로 직접 키보드를 쳐서 쓴 편지다. 

지난 3일 오후 2시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모두 소중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부착된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에서 '탈시설 정착 자립지원금 전달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는 탈시설의 주인공 이형기씨 외에도 50여 명의 관계자와 장애인들이 좁은 교육장에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김경수 센터장은 "북한 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있으면서 장애인이 탈시설을 하겠다고 하면 개인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며 "정부는 말로만 하지 말고 탈시설과 관련된 로드맵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 센터에서 지원하겠다고는 하지만 막상 탈시설 하겠다는 장애인이 나오면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이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데 장애인 당사자는 또 얼마나 더 힘들겠나.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라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서림케어드림 임태성 원장은 "이형기님은 시설 내 200여 명 지적장애인들의 권익을 보호해주고 있는 인권협회 회장님"이라고 소개하고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탈시설 시범정책에 적극 부흥하여 앞으로 3개년 계획을 세웠다. 3년내 최고 20여 명 정도를 이형기님의 사례와 같이 독립시킬 예정"이라며 "여기에는 자자체와 많은 시민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림케어드림에서 29년 동안 생활하고 61세의 나이에 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이형기씨를 지난 3일 인터뷰했다. 중증의 뇌병변 장애를 가진 이씨는 언어소통에 다소 불편함이 있어 김유빈 동료상담가의 도움을 받았다.

"29년을 시설에서만 살았네요"
 
탈시설 장애인 이형기씨와 김유빈 동료상담가(오른쪽)
 탈시설 장애인 이형기씨와 김유빈 동료상담가(오른쪽)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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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유빈(이하 김) "이형기님께서 '내가 얘기했는데 못 들으시면 기자님이 미안해하시니까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대화하는 게 상당히 두려우신가 봐요. 이형기님은 3년 전부터 자립을 생각하게 되셨어요. 1994년도 나이 32살에 당시 서림복지원(현 서림케어드림)에 입소하게 됐어요. 집에서 학교간 조카만 기다리던 시간보다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시설이 더 좋았대요."

이형기(이하 이) "시설에 들어가니 가장 신기했던 것이 휠체어였어요. 처음 탔는데 세상에 이런 게 다 있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가고 싶을 때 마음 편하게 가고. 행복했어요. 또 좋았던 것은 제 마음을 알아준 자원봉사자였어요. 너무 고마웠어요."
     
- 시설에 들어가게 된 이유를 좀 더 들어봐도 될까요?
"장애가 있으니까 9살 때 대전에 있는 시설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아버님께서 내가 죽을 때까지 안 된다고 하셔서 안 보내셨대요. 그러다 형기님이 32살 때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서 5남 1녀 형제들에게 누가 될까 봐 당신 스스로 선택해서 서림복지원에 들어갔대요. 이제 61살에 시설에서 나오게 되니 29년을 시설에서만 살았네요."
     
- 글을 굉장히 잘 쓰시던데 교육은 어떤 식으로 받으셨나요?
"몸이 이러니 학교 교육을 못 받고 집 안에만 있었어요. 그냥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초등학교 큰조카를 앉혀놓고 글을 배웠어요. 그동안에는 글이 있어도 뜻을 몰랐거든요. 1년 정도 배웠어요. 조카가 적어준 대로 혼자서 써보며 공부했어요. 학교 갔다 온 조카가 채점도 해주고 그랬어요.

그래도 학교는 가고 싶어요. 시설에서는 법적취학연령에 해당되면 누구도 예외 없이 인근 성봉특수학교로 보내줍니다. 그런데 제가 시설에 입소할 때는 이미 서른이 넘었기 때문에 취학이 불가능했어요. 이제는 검정고시 문이 항상 열려있으니 탈시설 하면 제일 먼저 학교에 다니고 싶어요. 또 검정고시를 합격한 탈시설 전기영님도 계시니 좋은 본보기도 있구요.

두 번째 꿈은 유명한 보치아(공을 던져 표적구에 가까운 공의 점수를 합하여 승패를 겨루는 경기로 패럴림픽 종목) 선수가 되고 싶어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울려 지역사회 주민과 함께 개인전, 단체전도 진행하면서 장애인 스포츠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

"이형기님은 충남장애인체육대회 보치아 종목에서 1등을 두 번이나 하고 은메달 동메달도 땄어요. 서산은 귀한 인재를 잃었고 당진은 귀한 인재를 얻었어요.(웃음)"

"마음대로 영화도 바다도 보고 싶었어요"
     
지난?3일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열린 '탈시설 정착 자립지원금 전달식'에서 이형기씨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지난?3일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열린 "탈시설 정착 자립지원금 전달식"에서 이형기씨에 대한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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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림케어드림에서 자립하기 위해 탈시설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단체생활이다 보니 오후 10시면 잠자리에 들어야해요. 새벽 2~3시까지 자유롭게 핸드폰 하고 싶어요. 시설에 있으면서 영화를 봤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나가면 마음대로 영화도 바다도 보고 싶었어요.

라면도 먹고 싶었어요. 라면을 먹으려고 하면 방을 같이 쓰는 분들이 '나도 한입' 해서 안 줄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포기할 때가 있었어요.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부스럭대니 한 방에 계시는 분들에게 미안해서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야 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나오려고 하니 그동안 잘해주신 것에 제대로 감사하다는 인사도 못 해 드렸어요. 함께 해주신 분들도 서운해하고. 이 자리를 빌려 저를 보살펴 주신 직원분들과 임태성 원장님과 김미수 원장님께 고맙다는 말씀 꼭 전해드립니다."

"이형기님이 입소해 있는 서림단기보호시설 원장님이 저희(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게 연락을 주셨어요. 사실 장애인의 탈시설과 관련하여 시설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원장님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이 자리를 빌려 원장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우리는 대상자가 의뢰하면 그때부터 프로그램을 짜서 진행하는 데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청약통장 개설이었죠. 그래야 임대아파트를 신청하거든요. 임대아파트를 받으려면 위치에 따라서는 1000명씩 대기한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만큼 기약이 없는데 이형기님은 운이 좋았죠. 조금 빨리 된 케이스에요."
     
- 탈시설을 한다고 했을 때 보호자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큰형님께서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죠. 혼자 나오면 외롭지 않겠냐고도 하셨고요. 활동지원서비스 제도를 몰랐던 거죠. 이형기님을 (활동지원사가) 케어해 드린다고 했더니 그때서야 '원하면 네가 한번 살아보고 싶은대로 하라'고 말씀해 주셨죠. 반대하셨으면 못 나왔어요. 그러니까 활동지원서비스의 힘이 그만큼 큰 거죠. 내 의지만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 혼자서 자립하려면 의식주뿐만 아니라 생활 가전제품이나 여러 가지 필요한 부분은 어떻게 돼요?
"지역에 따라서 시설에 계신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면 자립생활정착지원금 500~1000만 원이 나온대요. 하지만 충청남도와 세종시, 울산시 3곳은 지원이 전혀 없어요. 충청남도에서는 올해 예산을 세웠다고 하는데 아직 집행이 안 된대요. 안타깝네요. 지난 지방선거만 봐도 단 한 사람도 이것에 대한 공약이 없었어요.

이번에 형기님의 자립을 위해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300만 원 지원금과 함께 충청남도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와 서산시중증장애인후원회에서 각각 100만 원, (사)충남장애인부모회 서산지회(회장 심효숙)에서 50만 원, LG전자 서산호수공원점 한도현 대표님께서 많은 후원을 해주셨어요. 또 이형기님이 당진이 고향이신데 당진시에 터를 잡으셔서 그곳 단체에서도 후원을 해주셨고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단 말씀 꼭 올립니다."
     
- 8일 임대주택으로 떠나시는데 식사 등 전반적인 사항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저희(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가 입주를 도와줄 거예요. 임대료는 본인 통장에 들어오는 수급비로 내는 거고요. 그 돈과 본인이 지출하는 금액 일부를 충당해서 관리비와 함께 월세를 내는 거죠. 식사가 문제에요. 이형기님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으세요. 그래서 100%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아야 되는데 걱정인 건 24시간 케어는 안 되고 한 달에 120시간, 따지고 보면 1일 3~5시간 정도를 받기로 하고 나갑니다. 그것도 주 5일이냐, 매일 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고요.

일반적인 사람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지원하는 것과 시설에 있던 분이 자립해서 나가 생활하는 것은 좀 다른 개념이죠.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요. 정부에서 탈시설 말은 하는데 5년 동안 실질적인 지원이 없어요. 이런 것들이 뒷받침돼야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탈시설 장애인들이 당당히 외출할 수 있도록"
 
'탈시설 정착 자립지원금 전달식' 단체사진
 "탈시설 정착 자립지원금 전달식" 단체사진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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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시설을 하시는데 이형기씨께서 가장 걱정하고 계시는 점은 무엇일까요?
"'6월 8일 당진으로 이사를 가면 우리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는 손을 빼는 거냐?'고 걱정을 하십니다. 

그래서 서림단기보호시설 원장님도 지속적으로 관심 가지고 지역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은 도울 계획이라고 말씀해주셨고 단기보호시설 직원인 김상미 사회복지사도 일주일에 한 번씩 밑반찬을 직접 전달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진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하고 연계해서 1년간 사후 관리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이 잘 되게끔 해드리니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한 달에 전화 상담 월 4회 이상하고요. 한 달에 한 번 찾아뵙도록 하고. 특히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지역을 이용해 연계 활동하여 이형기님의 성공적인 자립을 지원토록 하겠다 했습니다.

그렇잖아요. 그동안 내 마음을 다 알아주던 사람이 갑자기 뚝 끊어지면 상당히 두렵죠.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진에서 정착하면 또 당진이 더 편해지시죠. 그때까지는 계속 출장 나가야지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아요."

- 올해가 장애인 탈시설 시범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서산지역은 탈시설 하시는 분이 많나요?
"지난번 순천으로 가신 분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셨고, 형기님은 두 번째 탈시설 1급 중증장애인이세요. 형기님 사례로 좀 더 지원 체계가 넓어질 필요가 있어요. 민간 후원으로 탈시설을 계속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죠. 서산시가 시범사업으로 선정된 만큼 빠른 사업진행으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지역사회 정착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길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해주세요.
"많은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탈시설을 하게 됐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이형기님이 무사히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정부에서도 올해부터 탈시설 시범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니 이참에 탈시설 장애인들이 당당히 외출할 수 있도록 아무쪼록 잘 조사하여 수정 보완했으면 합니다.

가령 휠체어를 타다 보면 인도를 사용할 수가 없어요. 가로수가 막혀 있거든요. 또 인도 끝자락에 턱이 있어서 되돌아가야 하는 사례도 많고요. 그러다 보면 도로로 가게 되는데 이번엔 운전자들이 '인도로 다녀야지 도로를 다니느냐고 위험하게'라고 합니다. 법을 제정하는 분들이 장애인들과 함께 몇 시간이라도 1일 체험을 해봤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사실, 장애인들도 쇼핑이나 은행 업무는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이용하니까 그다지 불편해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식당에 들어가는 건 또 난감해요. 전동 휠체어는 100kg씩 하는데 사람이 들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받침대가 없는 곳들은 못 들어갑니다. 최소한 장애를 가진 분들도 맘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장애인탈시설, #이형기, #서림케어드림, #서산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김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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